‘무안타 늪’ 이정후, 결국 선발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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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가 선발 제외된 것은 지난달 22일 보스턴전 이후 9경기 만이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대타로도 나가지 않고 벤치를 지켰다. 개막 이후 이정후가 선발 출전하지 않은 것은 이날까지 총 8번이다. 개막 직전 부상이 있었던 터라 시즌 초반 관리 차원에서 4차례, 허리 통증으로 지난달 2경기를 벤치에서 출발했다.
최근 2차례 결장은 앞선 6경기 사례와 상황이 다르다. 사유는 나오지 않았지만, 극심한 부진의 여파가 커 보인다. 이정후는 지난달 22일 보스턴전 결장 당시 6월 타율 0.172(58타수 10안타)로 기록이 저조했다. 밥 멜빈 샌프란시스코 감독은 이정후를 쉬게 하면서 반등을 기대했지만, 침체는 오히려 더 깊어졌다. 이후 8경기 연속 선발 출장했지만 26타수 2안타에 그쳤다. 22일 당시 0.252였던 시즌 타율이 이제는 0.240까지 떨어졌다. 최근에는 4경기 연속 안타를 치지 못했다. 주특기인 2루타도 뚝 끊겼다.
아직은 일시적 문제일 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정후는 콘택트 중심의 타자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파워를 정교한 타격으로 메운다. 홈런 타자와 비교하면 타구 운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그 타구의 운이 최근 이정후를 외면하고 있다.
스포츠 전문매체 디애슬레틱은 최근 이정후의 이런 특성을 언급하며 “슬럼프에 오래 빠져 있을 유형의 타자는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타구 운은 언제든 좋아질 수 있고, 꾸준히 맞혀내기만 한다면 시즌 초와 같은 성적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희망적인 관측만 하기에는 최근 침체가 너무 깊고 불안요소도 감지된다. 3~4월 23.2%였던 라인드라이브 타구 비율이 6월 13.2%까지 떨어졌다. 내야 뜬공 비율은 3~4월 5.7%, 5월 2.7%에서 6월 9.4%까지 치솟았다. 타구 질 자체가 좋지 않다. 타구 질로 추산하는 기대타율도 6월 0.238에 불과했다. 빠른 공 대처 약점도 꾸준히 지적받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도 하강 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6월 한 달 동안 13승14패로 승률 5할을 밑돌았다. 한때 LA 다저스와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1위를 다퉜으나 이제 9경기 차로 벌어져 3위까지 주저앉았다. 원래도 타격이 약했는데, 이정후까지 슬럼프에 빠지면서 득점력이 더 떨어졌다. 최근 4연패 기간 샌프란시스코는 6점밖에 뽑지 못했다.
무심한 듯 슴슴한 너. 무더운 여름이면 늘 생각나는, 나직하게 불러보는 그 이름. ‘평양냉면’이다. 이처럼 무구하고 질박한 맛의 음식도 없을진대, 이처럼 예송논쟁 저리가라할 번잡스러운 설전과 갈등을 빚어온 음식도 없다. 메뉴 자체로 장르가 된 음식. 탐구와 분석의 대상이 되고 계보도까지 거느린 평양냉면은 단순한 먹거리 이상의 무엇이다.
‘무심한 듯 슴슴한 너’는 페이스북에 기반한 평양냉면(이하 평냉) 동호회 이름이다. 2013년 개설돼 5100여명의 ‘평냉인’을 보유하고 있는 이 모임은 집단지성의 힘으로 전국 방방곡곡 냉면집의 현황과 각종 정보가 실시간 집대성되는 아카이브이기도 하다. 개설자인 김지인씨(그램퍼스 대표)는개성 출신인 외할머니 손에 이끌려 유년기때부터 40년 이상 평냉에 길들어 온 마니아다. 김씨를 포함해 김성준씨(국순당 해외사업부장), 정성익씨(바 801 대표), 이한주씨(디지털터빈 한국지사장), 김종혁씨(모리사와 코리아 대표), 전효재씨(온육집 대표) 등 6명의 평냉인이 지난달 25일 서울 청담동 냉면집 우주옥에 모여들었다. 우주옥은 올 상반기 평냉마니아들 사이에 ‘핫하게’ 떠오른 곳이다. 맑고 깔끔한 육수에 100% 메밀로 반죽한 면, 그 위에 수비드한 홍두깨살을 고명으로 올린 맛과 감각으로 입소문이 났다. 지디가 만든 피스마이너스원 하이볼 같은 ‘힙한’ 평냉이라나 뭐라나. 평냉에 소주 한 잔. 늘상 먹는 평냉이지만 언제나 기대감으로 설렌다는 이들의 평냉이야기에 귀 기울여봤다.
무심하고 슴슴한 그 맛이다. 외양도 수수하다. 하지만 한 그릇의 냉면이 만들어지기까지 인고의 시간과 노력이 있다. 고기를 삶아 맑은 육수를 만들어야 하고 메밀의 양을 적절히 배합해 반죽한 뒤 면을 뽑아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단순하고 순박한 모습 이면엔 생각지 못한 미학적 여정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때문에 여름철만 되면 ‘냉면값이 비싸다’는 관성적 지적들이 나오는 게 가슴 아프다. 냉면은 비쌀 수밖에 없는 음식이니 말이다.
평냉은 첫입에 매료되기는 쉽지 않다. 어찌 보면 소설 ‘어린 왕자’ 같다. 스무 살 때, 서른 살 때, 또 쉰이 되어 먹을 때마다 맛이 다르다. “기뻤을 때, 마음이 안 좋을 때, 혹은 소주와 곁들일 때. 먹는 상황과 기분에 따라 맛이 달라져요. 이렇게 지루하지 않은 음식은 아마 평양냉면밖에 없지 않을까요.”
‘면스플레인’이라는 말은 평냉 때문에 나왔다. 이렇게 먹어야 한다, 진짜 평냉은 이런 거다… 위작 여부를 감정하듯 평냉의 정체성을 두고 왈가왈부 설왕설래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공개됐던 옥류관의 평냉은 남한의 수많은 마니아를 충격에 빠뜨렸다. 달아오르던 면스플레인도 주춤해졌다. 대신 평냉을 즐기는 인구는 크게 늘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동호회 회원 수도 1000명대에서 3000명대로 껑충 뛰었다.
“엄밀히 말해 남한에 있는 평냉은 ‘서울식 냉면’으로 불러야겠죠. 진짜 평양냉면이라면 북한 고려호텔에서 요리하던 분이 만드는 서초동 설눈을 꼽을 수 있겠네요. 북한 출신 요리사들이 많지만 가장 최근까지 북한에 계셨던 분이거든요.”
마트에서 파는 사리와 동치미 육수를 사서 뚝딱 말아먹는 평냉. 평냉인 입장에선 평냉을 먹은 것으로 칠 수는 없다. 평냉의 핵심은 면장과 육수 내는 이의 손맛이다. 매장에서 면을 뽑아 삶아내는 자가제면은 기본이다. 냉면을 주문한 뒤 작동하는 제면기 소리에 흥분과 기대감이 솟구치기 시작하는 것은 평냉인으로서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메밀 100%를 내세우는 곳들도 있지만 전분을 배합해 식감을 차별화하는 것은 점포마다 고유 스타일이므로 절대 기준은 없다. 한때 메밀 원산지를 두고 몽골산, 미국산, 국내산을 따지는 열정이 휘몰아치던 시절도 있었다.
일반인들에겐 여름철이 익숙하지만 평냉인은 때를 가리지 않는다. 평냉을 먹으러 갈 때의 마음가짐도 조금은 달라진다. 제육볶음, 돈가스, 짜장면으로 한 끼 때우러 갈 때와는 다른, 특별한 무언가를 향한 기대감이랄까. 하지만 혼자 가야 할 때가 많은 외로운 음식이기도 하다. 대중적이지만 대중적이지 않은 음식이어서다. “손님을 모시고 유명한 평냉집에 간 적이 있어요. 말로는 좋아한다고 하시던데 막상 나오자 몇 젓가락 뜨고는 안 드시더라고요. 그때 느꼈던 안타까움과 아쉬움 말로 다 못 하죠. 그래서인지 친한 사람 아니고는 권하지 못하겠어요.”
이들에게 평냉은 한끼가 아니다. 가꾸고 다듬어 발전시켜야 할 사회적 자산이다. 종종 주말이면 서너 군데의 평냉집을 돌며 자신들이 사랑하던 맛이 유지되는지 살피기도 한다. 육수의 염도와 온도, 면의 상태는 물론이고 만두의 완성도도 꼼꼼히 체크한다. 하루에 네다섯 군데를 찾아 평냉을 먹기도 한다는 김지인씨는 “팬데믹 전 몇 년간은 리크루팅 사이트를 검색해 오픈을 앞둔 평냉집의 구인 공고를 확인한 뒤 누구보다 빨리 오픈 날짜에 맞춰 먹고 다닌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종혁씨도 “새로운 곳이 생겼다면 제주까지 찾아다녔는데 어느 순간 활화산처럼 늘어나 실시간 쫓아다니는 것은 포기했다”며 웃었다.
평냉은 장충동, 의정부, 우래옥 계열이니 하는 나름의 계보를 갖고 있다. 피란민들에 의해 남한에 정착하고 전수된 음식이다 보니 1세대 노포의 전통이 어떻게 이어졌는지, 그곳에서 일하다 파생·독립한 점포는 어디인지, 새롭게 등장한 곳은 어떤 전사(前史)를 가졌고 잠재력을 드러내는지 등은 맛과 함께 평냉인들이 관심을 두는 주요한 서사다.
“이런 냉면 맛도 모르는…” 평냉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을 질색하게 만드는 면스플레인의 전형이다. 비빔냉면을 먹겠다면, 혹은 좀 새콤달콤한 육수 맛의 물냉면을 고르면 어김없이 날아드는 말. 심지어 계열이 다른 평냉을 선택했다고 이런 비난이 오가기도 한다. 뿐인가. 가위질하면 안 된다, 겨자를 뿌리면 안 된다, 쇠젓가락으로 먹으면 안 된다는 갖은 ‘꼰대스러운’ 주장도 있지만 입맛에 맞게, 원하는 대로 먹으면 된다는 것이 이들의 이야기다.
단 하나. 평냉인이라면 ‘완냉’을 해야 한다는 일종의 법칙은 있다. 이는 면은 물론 국물까지 완전히 마셔 발우공양하듯 깨끗이 비워내는 것이다. 완냉되지 않았음은 평냉에 대한 실례이자 더할 나위 없는 혹평이기도 하다.
폭염이 시작된 지금, 어느 냉면집으로 가볼까. 이들이 즐겨 찾는, 추천할만한 곳들을 물었다.
경평면옥(삼성동)/반죽이 안 되면 문을 닫는 장인정신·하루 딱 300개만 빚는 만두·고객의 테이블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서비스, 광평(삼성동)/한식의 대가가 선보이는 차원 높은 맛·테이블마다 놓인 다시마초도 놓치지 마시길, 서관면옥(서초동)/단메밀과 쓴메밀을 블렌딩해 만든 냉면·점심특선 서관면상 강추, 양각도(일산)/원재료의 특성과 소금 등 조미료의 성분을 분석해 맛을 조합한 정성과 감동이 느껴지는 음식들, 을밀대(일산)/해외에서도 생각나는 냉면의 맛·변함없는 맛과 품질을 유지하는 곳, 진미평양냉면(논현동)/전체적으로 조화로운 맛과 기본기·9년째 미쉐린 빕구르망, 평양면옥(장충동)/평양냉면의 기준 아닐까·술안주로도 이곳 육수가 최고, 평안도 상원냉면(동교동)/제주산 메밀만 쓰는 손꼽히는 집·제육과 편육, 맛보기면까지 훌륭.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오전 10시 취임 30일을 맞아 기자회견을 개최한다.
기자회견 제목은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이다. 이 대통령이 모두발언을 하고 언론과 일문일답, 마무리 발언 순으로 진행된다.
이 대통령은 민생·경제와 정치·외교안보, 사회·문화, 기타 등 분야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을 예정이다. 대통령실은 “기자들과 보다 가까이 소통하고자 하는 이 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해 타운홀 미팅 형식으로 꾸려지며 일문일답은 사전 조율 없이 이뤄진다”고 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 100일 무렵 첫 공식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이 대통령은 두달 이상 시기를 앞당겼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일 페이스북에 “지난 30일, 5200만 국민의 간절한 열망과 소망을 매 순간 가슴에 새겼던 치열한 시간이었다”라며 “절박한 각오로 쉼 없이 달려온 지난 30일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4년 11개월의 각오를 새롭게 다지고자 기자회견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불법 사채를 쓰다가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진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상품권 예약판매’를 알게 됐다. 이른바 ‘예판’을 A씨에게 알려준 이는 그를 불법 추심하던 사채업자였다. 예판으로 현금을 구해 빚을 갚으라는 것이었다.
예판은 구매자와 판매자가 상품권을 사고파는 거래다. 다만 현금과 그 대가인 상품권이 오가는 과정에서 시간차가 발생한다. 구매자는 상품권 판매자에게 바로 현금을 주는 대신 판매자는 일정 기간 뒤 상품권을 발송한다. 이런 방식 때문에 예약판매로 불린다.
보통 급전이 필요한 이들이 상품권이 없는 상태에서 인터넷 카페, 카카오톡 등 단체 채팅방에서 구매자와 접촉해 거래를 한다. 양측이 적정선에서 거래를 하면 문제가 없지만 구매자는 먼저 돈을 주신 대신 매우 싼 가격에 상품권을 사는 구조라 불법 사금융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실제로 A씨는 사채업자가 연결해준 구매자 B씨에게 예판을 했는데 상품권 250만원을 3주 안에 보내주는 조건으로 현금 150만원을 받았다. 선이자 100만원을 제하고 돈을 빌린 셈이다. 기한 내 상품권을 주지 못하면 상품권 가격의 2배를 배상하고, 입금 후에는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조건도 달렸다.
상품권을 제때 못 보내면 직장이나 가족에게 전화하는 등의 불법 추심도 이뤄진다. ‘먹튀’를 했다며 주민등록증 등 개인정보를 온라인상에 올리기도 한다. A씨는 “사채 정리를 하려고 몇 차례 예판을 했다. 기한 내 상품권을 못 보내니까 B씨가 자정에도 부모님께 전화하더라”며 “상품권 거래라는 탈을 쓰고 있지만 불법 사채와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예판을 통한 신종 사채 피해가 잇따르면서 예판이 ‘불법 사채’에 해당하는지를 묻거나 협박 등 피해를 입었다는 민원이 금융감독원에 접수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6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불법 사채처럼 지인 연락처를 넘겼다가 협박을 당했다는 민원 등이 일부 있었다”며 “반대로 구매자가 상품권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양쪽에서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경기 양주경찰서는 최근 한 예판 구매자를 상대로 대부업법과 채권추심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양주서 관계자는 “아직 수사 초기 단계로 피해자가 더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쟁점은 상품권을 매개로 이뤄지는 신종 사채 수법을 대부업법으로 규율할 수 있을지 여부다. 대법원은 2019년 상품권을 할인 매입하는 행위는 ‘금전 대부’로 볼 수 없어 대부업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경찰은 최근 벌어지는 사건들이 과거 대법원 판례 사건과 어떻게 다른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불법 사금융 근절 범부처 태스크포스(TF)’에서 대응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대법원 판례 등을 고려했을 때 예판을 대부업법으로 규율하기 어려울 것 같다”면서도 “사실상 금전 대부를 목적으로 예판을 하고, 신종 사채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에 현황 파악과 대응책 마련을 위해 범부처 차원에서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훈 한전KPS비정규직지회 지회장(32)은 지난달 2일 야외 작업을 마치고 충남 태안군에 위치한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내 정비동으로 돌아왔다. 김충현씨(50)가 공작실에서 작업을 하다 기계에 끼어 사망한 뒤였다.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쳐놓고 수사 중이었고 2층에서 1층 사고 현장을 내려다보던 김 지회장은 빨리 유족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2018년 김용균씨 사망 사고 때처럼 사측이 은폐하거나 조작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처음 김충현씨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는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못해 사고가 났다고만 했다.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국서부발전, 한전KPS 간부들이 사고 현장에 도착한 상황이었다. 두 번째 전화를 걸어서야 “유족들이 빨리 오셔야 회사가 증거 등을 조작하지 않을 수 있다. 노조와 함께 대응하시면 좋겠다”며 사망 사실을 알렸다.
장례 기간 내내 영정 사진을 껴안고 우는 어머니를 보며 김 지회장도 함께 울었다. 충현씨가 일했던 공작실은 발전소에서 일하는 동료들이 작업을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지나칠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김 지회장도 현장 출동을 할 때마다 충현씨 사무실을 지나갔다. 나이 차이가 스무 살 가까이 나지만 2016년 함께 입사했고 가족보다 더 많이 보는 사이였다. 그는 장례식 때 충현씨 영정사진을 들었다.
2일은 김충현씨가 사망한 지 한 달 되는 날이다. 김 지회장은 가장 슬펐던 순간으로 영결식 때 충현씨 동료가 단상에 서서 편지를 읽던 순간을 꼽았다. 동료는 단상에서 청중을 보지 않고 영정 사진을 보며 “충현아 그곳에서는 차별, 아픔, 고통없이 살아라”는 편지를 읽었다. 김 지회장은 “생전 한 마디라도 더 건네볼 걸 미안하고 후회되는 기억들이 스쳐지나갔다”고 말했다. 김 지회장을 지난달 26일 서울 용산구 전국철도노동조합 회의실에서 인터뷰했다.
충현씨가 사망한 다음날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됐고 새 정부가 진용을 꾸리고 있다. 사고 후 4일 만에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대책위)의 요구안을 직접 전달받았고 이 대통령은 노동자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그로부터 10일 뒤엔 국무조정실 사회조정실장 주재로 고용노동부, 산업통산자원부,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정부 협의체가 꾸려졌다.
지난달 23일엔 김영훈 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지명됐다. 2021년 한전KPS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자 주변에서 김 지회장에게 “열심히 했던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 이름이 같다”는 이야기를 종종 건넸다. 노동계에서 열심히 활동한 선배와 이름과 같다는 이야기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그가 장관 후보자가 됐다. “투쟁을 많이 해보셨으니 노동자들의 내면의 고충을 더 아시지 않을까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일하는지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 얘기를 들어달라고 하고 싶습니다.” 정부 협의체 구성 의지, 논의 속도에는 기대를 하고 있다. “속도감 있게 추진하려는 것 같습니다. 다만 희망이 그저 희망고문이 될까봐 두렵기도 합니다. 그러지 않도록 열심히 싸우는게 저희 역할이겠죠.”
유족들은 대책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유족과 대책위 교섭 당시 한전KPS 관계자들은 첫 마디로 ‘처벌불원서를 써주면 안 되겠느냐’는 이야기를 꺼냈다. 유족들은 분노했다. 처벌받을 사람은 받아야 한다는 유족 뜻에 사측도 처음엔 “유족 뜻을 존중한다” 했지만 말을 뒤집었다. 다시 처벌불원서를 받아야겠다고 했다. 충현씨 소속 회사였던 한국 파워오엔앰 등 한전KPS 하청업체 직원들도 충격을 받았다. 같이 일하던 관리자들, 경영진이 유족들이 조문을 원치 않는데도 강행하려고 하는 모습에 장례식장을 24시간 지켜야 했다. 조합원들은 “이렇게까지 할 회사였냐”고 했다. 어떻게든 처벌받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2018년 김용균씨 사고 때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기 전이기 때문에 서부발전 전 대표이사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금은 다르다. 대책위는 사고에 대한 명확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근본 대책도 필요하다. 다단계 하청 구조에서 불합리한 불법 파견이 지속되고 있는데다, 위험이 외주화되는 현실이 바뀌지 않고선 동료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 지회장에게 ‘충현이형’은 혼자 일했던 사람으로 기억된다. 공작실 안에 기계가 6대 있었지만 혼자 일했다. 9·10호기 외에도 1~8호기 등 모든 가공 부품 일감이 김충현씨에게 왔고 점점 업무가 가중돼 힘들어했다. 임금은 오르지 않았고 간혹 깎이기도 했다. 김 지회장은 “한전KPS 수법”이라며 “공사 계약을 할 때 금액을 깎으면서 인원을 내보내는 간접 수법을 쓴다”고 말했다. 공사비가 줄면 하청업체에서는 한 명분 노무비를 빼는 식으로 대응했고 노조에선 그를 분담하려고 임금을 줄였다. 월급이 깎이는 계약이 진행된 후 결국 못 버티고 나가는 사람이 생기면 한전KPS는 ‘자연감소분’이라고 했다. 김 지회장은 “입사 이후 늘 그랬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일하는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김 지회장은 전기 설비 관련 유지 보수 업무를 한다. 초대형 발전기를 정비하기 위해서는 15kg 아령만 한 나사가 필요하다. 한 사람 힘으로 부품을 들 수 없기 때문에 크레인으로 움직인다. 힘을 합쳐 발전기 중요 부품들을 조금씩 조정해가면서 분해하고 조립한다. “조립을 마치고 시운전을 할 때 기계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면, 퇴근한 후에 멀리 서울까지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무사히 오늘도 퇴근했구나’ 안도도 되고 보람도 느껴요.”
발전소 폐쇄 계획은 본격화됐고 회사는 점점 채용을 꺼린다. 그러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인원은 필요하다. 업무가 과중되면 안전 체계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저희는 충현이형이니까 버틴 거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이었으면 진작 퇴사했을 거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사람이 없었을 겁니다.” ‘충현이형’에게는 잘 지켜봐달라고 하고 싶다. “생전에 힘들었던 것, 우리가 해내지 못한 숙제들 지금 남은 사람들이 잘 싸우려고 하니 지켜봐 달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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